서론: 선택발명의 본질과 비자명성
미국 특허법에서 ‘선택발명’은 선행기술에 개시된 광범위한 속(genus)이나 범위에서 특정하고 우월한 속성을 지닌 종(species)이나 하위 범위를 선택하는 발명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발명의 특허성은 신규성(35 U.S.C. § 102)이 아닌 비자명성(35 U.S.C. § 103)의 문제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선행기술이 특정 종을 명시적으로 개시하지 않는 한 신규성은 인정되므로, 쟁점은 해당 기술 분야의 통상의 기술자(POSITA) 관점에서 그 선택이 자명했는지 여부가 됩니다.
이 자명성 판단의 중심에는 세 가지 핵심 법리가 있습니다:
시도해 볼 만한 자명성 (Obvious to Try): 그 선택을 시도해 볼 동기가 있었는가?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 (Reasonable Expectation of Success, RES): 그 시도가 성공할 것이라는 합리적 가능성이 있었는가?
예상치 못한 결과 (Unexpected Results): 위 두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자명성 추정을 뒤집을 수 있는 놀라운 결과가 있었는가?
제1장: 자명성 판단의 기본 틀
미국 특허법 제103조는 발명이 이루어진 시점(AIA 개정 후에는 유효 출원일 이전)에 통상의 기술자에게 자명한 경우 특허를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이 판단을 위한 객관적인 분석 틀은 1966년 Graham v. John Deere Co. 판결에서 확립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모든 자명성 분석의 근간을 이룹니다.
Graham의 네 가지 요소:
선행기술의 범위와 내용: 관련된 모든 선행기술을 확정합니다.
선행기술과 청구된 발명의 차이점: 발명의 기술적 특징을 명확히 합니다.
관련 기술 분야의 통상의 기술 수준(POSITA): 평균적 전문가의 지식 수준을 정의합니다.
비자명성의 객관적 증거 (2차적 고려사항): 상업적 성공,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은 필요, 타인의 실패,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예상치 못한 결과 등을 평가합니다.
이러한 2차적 고려사항은 사후적 고찰의 오류를 방지하는 중요한 안전장치이며, 일견 자명성(prima facie obviousness)이 성립된 후 별도로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증거 전체의 일부로서 종합적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제2장: ‘시도해 볼 만한 자명성’과 KSR 혁명
‘시도해 볼 만한 자명성’ 법리는 통상의 기술자가 발명을 시도할 동기가 있었는지를 평가합니다. 2007년 연방대법원의 KSR v. Teleflex 판결은 이 법리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KSR 이전에는 선행기술 문헌에 명시적인 조합의 동기를 요구하는 엄격한 ‘교시-시사-동기(TSM)’ 테스트가 지배적이었습니다.
KSR 판결은 이 경직된 TSM 테스트를 폐기하고, “광범위하고 유연한” 접근법을 채택했습니다. 대법원은 문제 해결을 위한 설계상의 필요나 시장의 압력이 있고, 이를 해결할 예측 가능한 해결책의 수가 유한하다면, 통상의 기술자가 그 해결책들을 시도해 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로써 ‘시도해 볼 만한 자명성’은 특정 상황에서 자명성의 정당한 근거로 명확히 인정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KSR 판결은 선택발명에 대한 일견 자명성 입증을 더 용이하게 만들었고, 이에 따라 특허 출원인이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가 없었음을 입증하거나 ‘예상치 못한 결과’를 증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제3장: 분석의 핵심,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RES)’
‘시도해 볼 만한 자명성’이 성립하려면, 그 시도가 성공할 것이라는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RES)’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는 ‘시도해 볼 만한 자명성’ 법리의 남용을 막는 핵심 안전장치입니다.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는 절대적인 성공의 확실성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단순한 희망이나 가능성보다는 높아야 합니다. 이 기준은 기술 분야의 예측 가능성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 화학이나 생명공학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기술’ 분야에서는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 입증이 더 어렵습니다.
두 가지 상반된 판례가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 분석의 핵심을 잘 보여줍니다.
Pfizer v. Apotex (자명성 인정): 이 사건에서 법원은 기존 약물의 안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행기술 문헌(Berge)에 나열된 53개의 유한한 수의 알려진 음이온 목록에서 적절한 염을 스크리닝하는 것은 자명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통상의 기술자가 이 일상적인 스크리닝을 통해 수용 가능한 특성의 염을 찾아낼 것이라는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Teva v. Corcept (비자명성 인정): 이 사건의 특허는 특정 약물을 고용량으로 투여하는 방법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선행기술(약물 라벨)은 안전성 문제로 인해 해당 고용량 투여를 명백히 ‘회피하도록 교시(teach away)’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청구된 ‘고용량에서의 안전한 효능’이라는 구체적인 목표에 대한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판례는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 분석이 청구항의 구체적인 한정사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청구항이 구체적이고 선행기술이 회피하도록 교시하는 내용을 포함할수록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는 부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4장: 궁극의 반박, ‘예상치 못한 결과’
일견 자명성이 성립하더라도, 특허 출원인은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2차적 고려사항을 통해 자명성 추정을 반박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선택발명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 수단입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를 증명하기 위한 핵심 요건:
종류의 차이 증명: 결과가 단순히 더 나은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차이’이거나 통상의 기술자에게 진정으로 ‘놀라운’ 것이어야 합니다. 이는 변리사의 주장이 아닌, 구체적인 비교 데이터와 같은 사실적 증거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넥서스(Nexus)’ 요건: 입증된 예상치 못한 결과와 청구된 발명의 ‘신규한 특징’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넥서스)가 존재해야 합니다. 만약 결과가 마케팅이나 청구되지 않은 특징 때문이라면, 그 증거는 가치가 없습니다.
청구항 범위와 일치하는 증거: 증거는 청구항의 범위와 합리적으로 일치해야 합니다. 특정 화합물 하나의 놀라운 효과를 입증하고, 그 효과가 전체 속(genus)에 적용될 것이라는 근거 없이 넓은 속 전체를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Millennium v. Sandoz 사례: 이 사건에서 법원은 기존 약물의 심각한 불안정성 문제를 해결한 특정 에스테르 화합물이 비자명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선행기술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어떠한 교시도 없었고, 오히려 실패한 시도들만 있었습니다. 생성된 에스테르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우월한 안정성, 용해도, 용출 특성을 보였고, 이 강력한 예상치 못한 결과의 증거가 자명성 판단을 뒤집는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제5장: 특허 실무자를 위한 전략
선제적 명세서 작성: 명세서에 가장 가까운 선행기술과의 비교 데이터를 포함하고, 그 결과가 왜 예상치 못한 것인지를 기술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또한, 발명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점을 명확히 기술하고, 다양한 범위의 종속항을 마련하여 후퇴 위치를 확보해야 합니다.
설득력 있는 증거 생성: 자명성 거절에 대응하기 위한 비교 시험은 반드시 가장 가까운 선행기술과 직접 비교해야 하며, 데이터는 통계적, 실용적으로 유의미해야 합니다. 전문가 선언서는 데이터의 의미를 해석하고 예상치 못했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조기 증거 개발: 특허심판원(PTAB)의 특허무효심판(IPR)과 같은 절차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므로, 2차적 고려사항에 대한 증거는 특허 생애주기 초기에 미리 개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결론
미국 특허법상 선택발명의 특허성은 ‘시도해 볼 만한 자명성’,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세 법리의 상호작용을 통해 결정됩니다. KSR 판결은 자명성 입증의 문턱을 낮추었지만, 동시에 ‘성공에 대한 합리적 기대’의 중요성을 부각시켰습니다. 강력한 자명성 증거에 직면했을 때, 특허권자의 가장 효과적인 방어 수단은 청구항의 신규한 특징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갖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입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발명 초기 단계부터 특허 전략을 긴밀히 연계하고, 발명의 기술적 기여도를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혁신의 가치를 보호하는 핵심입니다.